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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 건강과 문화

일제강점기 김치 문화의 변화와 대체 재료

by 훗키 2025 2025. 9. 10.

1.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배경 속 김치 


한국의 전통 음식인 김치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식민지 시기는 한국인의 식생활 전반을 왜곡시킨 시기였다. 일본은 식민 통치를 위해 쌀과 곡물, 주요 농산물을 대규모로 수탈했고, 이는 민중의 밥상에 직격탄을 날렸다. 김치는 본래 지역별 특산물과 제철 채소를 활용해 다양하게 담가 먹는 음식이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주요 재료조차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 빈번했다. 농민들은 일본에 세금 명목으로 곡물과 채소를 강제로 바쳐야 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재배를 제한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농업 구조가 왜곡되면서 배추·무 같은 김치의 기본 재료마저 귀해졌고, 그 결과 김치 문화는 불가피하게 변화를 맞게 되었다.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에도 김치를 지켜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재료가 부족해도 어떻게든 김치를 담가 밥상에 올리는 행위 자체가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다. 특히 김치는 제사·명절·혼례 등 주요 의례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었기에, 그 전통을 유지하는 것은 곧 정체성을 이어가는 일이었다. 결국 일제강점기의 김치는 단순한 음식의 차원이 아니라, 억압 속에서 지켜낸 생활 문화이자 상징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일제강점기 김치 문화의 변화와 대체 재료


2. 재료 부족과 대체 재료의 등장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식량과 부재료의 부족이었다. 전쟁 물자 수탈과 농산물 강제 징발은 민중의 식탁을 궁핍하게 만들었다. 김치 양념의 핵심인 고춧가루는 일본군의 군수 물자로 활용되며 대량 반출되었고, 국내 소비는 극도로 제한되었다.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고춧가루 대신 들깨가루나 깻잎, 산초, 심지어 고춧잎을 잘게 다져 매운맛과 향을 대신했다. 또한 새우젓·멸치젓·황석어젓 같은 젓갈류도 일본의 수산 자원 통제 정책 때문에 크게 줄었고, 대신 간장·된장·소금물·메주 같은 대체 감칠맛 재료가 활용되었다.

채소의 대체도 이루어졌다. 배추는 겨울철 주요 김장 재료였으나, 공급이 불안정해 무청이나 열무, 시래기, 고구마 줄기, 호박잎 같은 값싼 채소로 김치를 담갔다. 심지어 일부 농촌에서는 바닷물을 끓여 소금 대신 쓰거나, 장기 발효시킨 장국을 소금 대체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는 김치의 원래 풍미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대체 김치들은 종종 ‘임시 음식’으로 불렸지만, 그 속에는 민중의 적응력과 창의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경험은 훗날 새로운 김치 변형 종이 등장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위기 속에서도 음식을 지켜낸 생활 지혜의 산물이었다.

3. 김치 문화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 


일제강점기 김치의 변화는 단순한 음식 재료의 차원을 넘어, 민족 정체성과 저항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한국인의 식문화를 억압하고 일본식 식단을 강요했다. 학교 급식이나 군대 식사에서는 된장국, 일본식 절임 반찬 등이 중심이었고, 김치 섭취를 제한하거나 깎아내리는 태도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여전히 김치를 고수했고, 그것을 일상에서 유지하는 것을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는 행위로 여겼다.

특히 김장은 공동체 의례로서 더욱 큰 상징성을 가졌다. 농촌 마을에서는 가을이 되면 이웃이 함께 모여 김치를 담갔는데, 일제강점기에도 이 전통은 끊기지 않았다. 부족한 재료를 서로 나누고, 힘든 노동을 함께 하며, 김치 항아리를 이웃과 나누는 행위는 공동체 연대의 증거였다. 도시 빈민층이나 노동자들은 잔여 채소를 모아 김치를 담갔고, 그 과정에서 나눔과 협동이 강조되었다. 이처럼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공동체와 정체성을 잇는 끈이었다.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맞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문화적 저항으로 기능한 것이다.

4. 대체 재료 김치의 의의와 현대적 재해석

 
오늘날 학자들은 일제강점기의 대체 재료 김치를 단순히 결핍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적 적응과 문화적 저항의 결과물로 평가한다. 배추 대신 무청과 시래기, 젓갈 대신 된장이나 간장을 활용한 김치는 당시의 궁핍을 버티게 한 생존 음식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시대를 버티려는 강한 의지와 공동체적 창의성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현대에도 이어져 열무김치, 얼갈이김치, 호박잎 김치 등 다양한 변형 김치가 대중화되는 기반이 되었다.

현대 퓨전 김치, 비건 김치, 저염 김치 같은 새로운 시도들도 결국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맞닿아 있다. 즉,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체 김치의 경험은 오늘날 김치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중요한 토대였다. 더 나아가 일제강점기에 김치를 지켜낸 행위는 단순한 음식 전통의 보존이 아니라, 문화적 자존심과 정체성의 방어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김치 문화는 한국 음식상의 아픈 기억인 동시에, 강인한 적응력과 정체성 보존의 상징으로 재조명된다. 오늘날 김치가 세계적인 발효식품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바로 이런 역사적 경험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김치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한국인의 기억과 정체성을 담은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