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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 건강과 문화

조선시대 문헌 속 김치 기록: 장아찌에서 배추김치까지

by 훗키 2025 2025. 9. 8.

1. 조선시대 초기 김치와 침채(沈菜)의 개념


조선 전기에는 지금 우리가 먹는 빨갛고 매운 배추김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김치라는 단어 대신 ‘침채(沈菜)’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는 채소를 소금물이나 장국에 담가 저장한 음식을 뜻한다. 지금의 장아찌와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흔히 먹던 침체는 무, 오이, 가지 등을 소금물에 절여 만든 음식으로, 맑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었다. 고춧가루가 전해 내려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붉은색이나 매운맛은 없었고, 대신 은은한 짠맛과 시원한 국물, 채소 고유의 아삭한 식감이 중심이었다. 이러한 침체는 단순히 반찬 차원을 넘어, 겨울철 채소가 귀한 시기에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저장 기술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침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계절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지혜였으며, 한국인의 저장 음식 문화가 얼마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였다.

조선시대 문헌 속 김치 기록: 장아찌에서 배추김치까지


2. 조선시대 문헌 속 김치 기록과 세시풍속


조선 중기 이후로는 다양한 문헌 속에서 침체, 즉 김치에 대한 기록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게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허균의 《도문대작》과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에는 무와 오이를 절이는 방법이 담겨 있어, 당시 사람들이 이미 체계적인 김치 조리법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여성 생활 지침서인 《규합총서》에는 무, 배추, 오이 등 다양한 채소로 만드는 침체법이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절이는 시간과 소금 농도, 국물량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는 김치 담그기가 단순한 요리법을 넘어 일종의 생활 지식 체계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풍속서인 《동국세시기》에서는 김장이 겨울철 세시 행사로 묘사된다. 김장은 단순히 김치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모여 노동을 나누고 음식을 공유하는 사회적 의례였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문헌 속 기록은 당시 사회 계층과 여성의 역할, 나아가 가정의 운영 방식까지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규합총서》의 경우, 주로 양반가 여성들을 위한 생활 지침서였는데, 이 안에 김치 담그는 법이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는 사실은 김치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집안의 위신과 생활의 질을 상징하는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김장은 또한 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행사로, 품앗이 형태로 이웃이 서로 돕는 협력적 노동 문화를 형성했다. 이러한 전통은 단순히 음식 저장 기술을 넘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고 공동체 유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문헌 속 김치 기록은 단순한 조리법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당시 사회 구조와 문화적 가치관까지 반영하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라 할 수 있다.

3. 고추 유입과 붉은 김치의 탄생


지금의 김치와 과거 침체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고추의 도입이다. 고추는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외국을 통해 조선에 전해 내려왔지만, 처음에는 관상용이나 약재로 제한적으로 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추는 음식에 본격적으로 사용되었고,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김치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고춧가루가 첨가되면서 김치는 붉고 매운맛을 띠게 되었는데, 이는 단순한 맛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고추에 포함된 캡사이신은 강력한 항균 작용을 발휘해 김치의 저장성을 높이고, 발효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패를 막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붉은 색과 매운맛은 식욕을 자극하고 음식의 풍미를 크게 향상시켰다. 이 변화는 김치가 단순히 담백한 절임 채소에서, 지금 우리가 아는 발효 배추김치로 진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고추의 유입은 한국 음식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고춧가루는 김치뿐만 아니라 찌개, 장류, 무침 요리에까지 활용되면서 한식의 매운맛 문화를 형성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입맛의 변화를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고춧가루의 항균·보존 효과 덕분에 김치는 계절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계절 내내 섭취할 수 있는 발효식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김치의 붉은 색은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이미지로 자리하면서, 외국인들에게도 한국 음식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결국 고추의 도입은 조선 후기 식생활의 큰 변혁이었으며, 김치가 단순히 절여 먹는 채소가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발효식품으로 발전하는 데 핵심적인 계기가 되었다.

4. 조선시대 김치 기록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


조선시대 문헌 속 김치 관련 기록은 단순한 조리법이나 생활의 흔적을 넘어, 한국인의 식문화와 정체성을 담아내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침체에서 시작해 고춧가루가 들어간 붉은 김치로 발전한 과정은 한국 사회가 시대적 변화와 외래 재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장은 단순히 겨울철 먹거리를 준비하는 행사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모여 협력하고 나누는 공동체적 행사였다. 이를 통해 김치는 한국인의 삶과 관계, 나눔의 가치를 담은 상징적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우리가 먹는 김치는 단순히 조선시대의 음식을 계승한 결과물이 아니라, 수백 년간 이어진 생활 방식과 사회적 선택이 쌓여 완성된 산물이다.

 

더 나아가 김치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생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김치 기록은 그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 계절 주기, 사회적 의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김장 행사는 마을 단위의 협력과 나눔 정신을 강화했으며, 이는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을 상징하는 중요한 전통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김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문화적 자산이자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상징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문헌에 남은 김치 기록을 연구하는 것은 과거의 조리법을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김치는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며, 지금도 우리의 일상과 세계인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살아 있는 발효 유산으로 남아 있다.